최강야구에서 149km의 구속을 끌어올려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파이어볼러 이대은 선수입니다. 오늘은 엄청난 열정으로 팀의 에이스로 등극한 이 선수의 메이저리그 시절과 KBO리그 그리고 인생스토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파이어볼러 이대은의 메이저리그 시절>
신일고등학교 졸업 직전 두산에서 먼저 입단 제의가 있었으나 아버지의 꿈을 따라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트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계약금 81만 달러 한화로 10억 원 정도 입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선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캠프 때 자고 일어나면 많은 선수들이 사라져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 생존했습니다. 잘하긴 하지만 어느 날 보면 또 엄청 못 사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희망 고문에 가까운 만년 유망주였습니다. 빅리그에 닿을 듯 말 듯 7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일 수도 있습니다. 월급 150만 원에 집값과 차비를 알아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식사는 빵에다 햄 하나 올라간 게 끝이라고 합니다. 결국 빅리그 데뷔는 실패하게 됩니다. 마이너리그의 fa가 되었고 계속될 듯 말 듯하다 보니 조금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이 투수 강국이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 2015년 지바 롯데와 계약하게 됩니다. 2년 계약 7억 원 정도로 이적했습니다. 일본에서 첫 시즌은 통산 9승 9패 5 홀드를 기록 전반기에만 9승 2패를 기록했습니다. 아홉수에 걸려 넘어가지 못했고 두 번째 해에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1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자는 2루에 있었고 4번 타자를 상대해야 되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가게 됩니다. 쓰리볼이 되었고 고의 사고로 타자를 내보내라는 감독의 지시가 있었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던졌고 어중간하게 걸쳐 스트라이크가 돼 버린 것입니다. 그다음 공도 애매하게 던져야겠다는 결심을 먹었고 그 공이 파울이 돼버리자 불펜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감독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았고 거부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 이대은은 고의 사구로 내보내기 아까워진 상태였고 다시 한번 더 애매한 공을 던졌습니다. 또 파울이 됐다고 합니다. 점점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다시 한번 애매한 공을 던지게 됩니다. 또 파울이 나오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대은은 불펜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던졌는데 하필 안타를 맞은 것입니다. 그대로 2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2군 다승왕을 했습니다. 이게 일본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뛰어난 외모로 인해 인기가 많았습니다. 경찰 야구단에 있을 때 찾아오는 일본 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대은의 KBO리그 그리고 KT위즈>
2017년 경찰청에 입대하게 되었고 제대 후 2019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 KT WIZ에 입단하게 됩니다. 시즌 초반 선발 투수로 시작했으나 초반부터 부진했고 부상도 있었습니다. 10승이 쉬울 줄 알았으나 kbo의 무서움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시즌 중반 불펜 보직을 변경했고 팀 역대 시즌 최다 17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세이브 기록에 비해 투구 내용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필승조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기에 최저연봉에서 270%로 상승한 연봉 1억 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2020년 좋지 못한 폼을 보여주었습니다. 2021년 파이어볼러라는 폼을 되찾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습니다. 등판을 하진 못했으나 케이티 소속으로 우승을 했습니다. 그 후 33세에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은퇴 전 구속은 153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대은은 병역 문제부터 은퇴까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KBO에서 뛰지 않은 해외파 선수들은 2군 리그 퓨처스 리그에 출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현역 입대를 해야 했고 입대를 하는 순간 선수 생활은 끝이라고 보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제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에 한해서 국내 야구 복귀를 조건으로 2군 경기에 출전을 허용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대은은 상무 및 경찰 야구단에 입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제도에 해당되는 사람은 이대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대은 특별법이라 불리며 비판적인 여론이 생겼습니다. 이대은은 자신이 거주지와 가까운 경찰 야구단을 선택했고 상무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신 때문에 경찰 야구단에 탈락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완전 나가리가 된 것이 맞지만 경찰야구단에 재선발을 하게 되고 남은 자리가 한 명이라는 사실 알려지자 특혜가 확실시되었습니다. 이대은은 경찰 야구단 최종 합격하게 됩니다. 그 후 KBO에서 뛰겠다는 의사가 있었다면 논란이 없었을 수 있지만 이대은은 인터뷰 등에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말을 아꼈고 다시 해외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kt 위즈의 지명 확정되면서 논란은 종결되는 듯했으나 마무리가 좋지 못했습니다. 구단에 문자 메시지로 은퇴 통보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논란이 되었습니다. 또한 더 이상 야구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고 했던 선수가 최강 야구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한 야구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 많았습니다.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된 이유는 kt에 와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속이 140도 안 나왔고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이었고 열심히 해서 150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있는 힘을 다 짜낸 것입니다. 결국 잦은 부상과 슬럼프에 결심했습니다.
<파란만장한 스토리>
이대은은 1989년생 키는 189입니다. 학창 시절 야구 성적이 좋았습니다. 이대은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의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대은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지원이 너무 과했다고 합니다. 이대은 본인은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축구나 농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야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야구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약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시작은 폭투였습니다. 2015년 프리미어리그 12 때 압도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8개월가량 야구에서 손을 떼었기에 다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더 이상 야구에 대한 미련이 없어 이대은의 야구는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팀에게 민폐가 될 수 없었고 팀원들에게 미안해 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야구에 대한 열정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이대은이라는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대표 파이어볼러의 명성답게 구속 149 찍어버렸습니다. 은퇴를 왜 했을까 하는 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되게 행복해 보입니다. 주변 동료들은 지금 행복하면 됐다며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이대은은 3년간의 연애 끝에 래퍼 트루디와 결혼했습니다. 이대은이 은퇴하고 나서 아내 트루디는 더욱 바빠졌습니다. 예능 방송에서 아내 트루디는 혼자 집안일을 하고 이대은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남편으로 밉상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은퇴 후 게임 bj를 꿈꿨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게임의 취미였고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수빈은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이대은이 정수빈에게 정말 더러운 장난을 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대은의 목에 타투가 있습니다. 경찰 야구단에 들어가려고 지워보려고 했으나 안 지워져서 실패하였습니다. 문신이 있는 피부를 시술로 처리하고 겨우 입대했다고 합니다. 이후 흉터를 가리기 위해 같은 자리에 새로운 그림 문신을 했습니다. 최강야구에는 파스 같은 것을 이용해서 가리고 출전하고 있습니다. KBO의 장발 유행을 이끈 장본인인 이대은 선수의 최강 야구에서 행복 야구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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