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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이택근의 최강야구와 포수 입단 스토리 그리고 과거이야기

by 하우스윗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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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에는 파워, 스피드, 컨택, 능력, 수비 등이 있습니다. 모든 능력을 오각형으로 골고루 갖춘 선수이자 팀을 위해 노력하는 이택근의 이야기입니다. 태권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택근의 최강야구와 포수로 입단한 스토리 그리고 과거이야기 알아보겠습니다.

 

<프로야구 이택근과 최강야구>

은퇴한 야구 선수가 외야에서 홈으로 던져 주자를 잡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했습니다. 이택근은 선수 시절 더 많은 안타를 치고 더 많은 홈런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팀을 위한 플레이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초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타자인데도 초구는 게임의 흐름에 따라 투수가 던지는 공의 횟수가 많아져야 팀이 이길 수 있는 길로 가기에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는 선수입니다. 개인 기록을 우선시했다면 하기 힘든 생각입니다. 처음. 최강 야구에 출연하기로 마음먹고 단장을 만났을 때 여기서 슈퍼스타가 돼 보겠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칠 것이고 욕심을 내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처럼 안 되었습니다. 타석에 들어서게 되면 팀 배팅을 버릇처럼 하게 되었고 자신이 어떤 선수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강 야구를 보면 항상 묵묵히 경기를 합니다. 분명 MVP를 여러 번 받을 법했지만 오랫동안 받지 못했습니다. MVP를 받고 싶어 했고 요청까지 했습니다. 창단 후 24경기 만에 mvp를 받게 되었고 너무 기쁜 나머지 구르기로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최강 야구를 시작하게 이유는 아들 때문이라 아빠가 야구장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아빠를 골프 선수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아빠가 이런 야구 선수였다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직관을 온 경기에서 뜬볼 아웃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택근 선수는 히어로즈의 레전드 선수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어떠한 일 때문에 팬들에게 인사를 못하고 마무리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멋있게 MVP를 탄 후 팬분들께 하지 못했던 인사를 했습니다.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전혀 없었습니다. 같이 해보고 싶었고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과 야구를 하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야구를 하시는지 배워보고 싶고 굉장히 궁금했다고 합니다. 외야수로 활약했고 지금 현재도 하고 있는 이택근은 2003년 포수로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그러나 시합을 나가기 위해 포수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포수로는 설 자리가 없었던 프로 무대였기에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강 야구에서 다시 한번 기회가 왔습니다. 이홍구가 입스로 힘들어할 때 대신해서 나가게 됐습니다. 팀을 위해 선뜻 나서기로 했습니다. 약 20년 만에 마스크를 쓰게 되었습니다. 선수 생활 동안 아쉬웠던 부분이고 포수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래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오주원과 19년 만에 호흡을 맞춰보았습니다. 그 결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운동하던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찡한 감정이 든다고 합니다.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한국 시리즈 우승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야구 선수로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로야구 이택근의 포수 입단 스토리>

이택근은 1980년생 키는 183입니다. 경남 상고를 나왔고 대통령 배 전국 고교야구대 우승을 이끌었던 포수 유망주였습니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받았으나 고려대에 진학하였습니다.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대만 야구 월드컵에 출전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현대의 계약금 2억 3천만 원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즈에 들어가자마자 두 번 우승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우승이 가장 쉬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우승하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현대에서 포수로 뛸 수 있는 티오가 없었기에 1루수와 3루수를 오가다가 2006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했습니다. 첫 시즌 투수 이동학과 신인왕 경쟁을 벌였지만 두 표 차로 수상에는 아깝게 실패했습니다. 2005년에는 많은 타석에 나선 건 아니지만 3할 3푼 12위 고타율을 기록했습니다. 2006년부터 중견수로 전향해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뛰면서 전반기에만 9 홈런을 기록해 홈런 레이스에 출전하였습니다. 이때 모두 양준혁이 우승할 줄 알았지만 이택근이 결승에서 홈런 하나를 치고 우승했습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 연속 3할 타율에 4할 출루를 기록하면서 리그 최정상급 외야수로 성장했습니다. 2009년에는 자신의 도루 최다 기록인 15 홈런 43 도루를 기록하여 골든글러브도 수상했습니다.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성공적인 케이스입니다. 팀원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매번 방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을 끄고 햄버거 배달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불펜 포수가 없어 불펜 포수를 보는 모습을 보고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는 것처럼 보였으나 구단의 자금난으로 인해 2009년 말 강병우, 박영복과 현금 38억 원을 대가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lg에서 시즌 초반 일곱 경기를 끼고 허리 통증을 이유로 2군에 내려갔습니다. 2009년 시즌을 마치고 무릎 수술을 받은 후 페이스를 끌어올리려다 무리를 한 탓에 허리 상태가 박용택과 함께 후반 3개월 동안 괴물 같은 타율 상승폭을 보이며 결국 2010 시즌을 타율 3할 3리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때 9월에만 4할 3푼 1리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LG에서의 성과는 부상이 너무 자주 발생하는 유리 몸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LG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넥센으로 간 후 LG전에서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2012년 친정팀 넥센 4년 총 50억의 계약하며 5할에 달하는 득점권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보여주며 넥센 타선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2013년에도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가을 야구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다음 fa 금액 차이가 많이 나도 다른 팀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야기하여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2014년 커리어 첫 20 홈런과 장타율 5할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패해 준우승을 했습니다. 2015년 2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넥센 히어로즈와 4년 35억에 계약했습니다. 이후 주장직을 서건창에게 넘겼습니다. 2017년 통산 1500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유연한 타격폼으로 안타를 만들어냈습니다. 2019년 문우람은 승부조작 중개인 해명 기자회견에서 선배에게 야구 배트로 폭행당했고 머리를 일곱 차례나 맞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가해자는 이택근이었고 2015년 일어난 일이 2019년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방망이 뒷부분으로 머리 몇 대 쳤던 건 사실이라고 합니다. 전날 두발 상태에 대한 지적을 했으나 그다음 날 그대로 왔기에 배트로 머리를 몇 대 쳤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분명 때린 사람 잘못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택근은 36경기 출전 정지를 당했고 히어로즈 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 거론되는 등 소속팀에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선수였으나 안타까운 사건으로 힘들어졌습니다. 2020년 시즌 막판이 되도록 어떤 소식도 안 들리던 와중 키움 구단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이택근은 이정후의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으며 히어로즈 선수들이 은퇴식을 열어주었습니다. 은퇴식은 동료들의 주최로 이루어졌습니다. 

 

<과거 이야기>

2020년 11월 키움 구단으로부터 방출이 되었습니다. 그 후 이택 군은 상대로 키움을 상대로 품위 손상 징계 요청서를 kbo에 제출했습니다. 이택근과 구단과의 갈등 내용은 이렇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키움 2군 선수들에게 남아 있으라는 지시가 있었고 키움 구단 의사회 의장이 등장해 선수들과 캐치볼 등 야구 놀이를 한 영상이 공개되어 파문이 되었습니다. 그중에 선 1.5군 선수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택근은 선배로서 아무 말도 못 한다는 게 창피했습니다. 선수들은 오락하는 카드가 아닙니다. 카드인 것 마냥 감정을 무시한 채 선수들을 대했습니다. cctv를 돌려 영상 제보자 색출에 나섰고 이택근이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촬영하고 있는 cctv 영상을 이택근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팬을 사찰했고 선수한테 그걸 알아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팬은 뿐만 아니라 히어로즈의 굉장히 오래된 팬인데 사찰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회사 놀이터에 야구장을 만들어 놓고 선수들하고 캐치볼을 한다는 것이 프로야구단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야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택근이 시즌 도중 구단 측에 코치 자리를 요구했으나 거부했고 구단과의 사이가 틀어졌기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택근은 구단에서 코치 제의를 하더라도 안 할 생각이었습니다. 힘들게 코치된 사람들 자리를 뺏는 게 말이 되냐고 이야기했습니다. 키움 구단 의사회 의장이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이택근은 진작에 나왔어야 할 사과문이 올해 마지막 날 겨우 나왔다며 여론 무마용 사과가 아니길 바란다 진심으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반성했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선수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택근은 선수 시절 팬 사인회 중 미리 사인을 해놓고 팬들에게 알아서 가져가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떴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서비스가 좋은 선수들과 항상 비교당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해명을 했습니다. 해명할 기회가 없었고 너무 답답했다고 합니다. 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주장이었고 전 선수단이 사인을 하고 있는데 그냥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팬분들이 많이 오시니까 빠른 진행을 위해 사인을 먼저 해놓고 오시는 팬들의 이름을 다 써드리고 한다 경험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다 사인을 여러 장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내부적 문제 때문에 갑자기 코칭 스텝에게 콜이 들어왔고 나갔는데 코칭 스텝은 사인회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잠깐 갔다 올게 하고 감독님 하고 이야기하고 왔다고 합니다. 야외라 바람이 많이 불어 사인종이가 다 날아가버렸지만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또 사인을 했습니다. 다음 날 난리가 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팬 사인회를 하는데 선수가 그냥 갈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이택근은 타율 3할 2리 1621안타 136 홈런 175 도루 골든글러브 2회 한국시리즈 2회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선수 시절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에 대해선 상대팀에서 치기 어려운 선수보다는 컨디션이 중요하다며 컨디션만 좋으면 아무리 어려운 공도 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굳이 뽑으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대표 좌완 김광현이라고 했습니다. 이택근은 잘 치긴 했지만 볼이 너무 좋아서 감탄이 나올 정도라고 했습니다.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일본을 이긴 경기입니다. 박용택은 자기가 lg에서 이택근이 있을 때 빼놓고는 자기 자리를 위협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은퇴식 이후 초중고등학교 야구부를 돌면서 재능 기부를 했습니다. 배우 윤진서와 열애를 한 적이 있고 속옷 화보 촬영을 했습니다. 이택근에게 야구란 영혼이고 내 일부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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